변호사가 본 화성동탄경찰서 성범죄 수사 과정의 문제점
저는 변호사가 된 뒤로 꾸준히 성범죄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형사사건을 수행하며 겪은 일들을 토대로 이번 화성동탄경찰서 사건을 보고 든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.
이보다 더한 사건들은 쌔고 쌨다
- 이번 사건은 경찰관이 여성의 신고를 받고 CCTV를 통해 동선을 추적한 결과 남성의 집을 찾아냈고, 집에 찾아와 신원조회를 했습니다.
- 이 과정에서 경찰관은 피의자에게 반말과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고,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성으로서는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.
- 일단,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겪는 수사상황은 여러분들이 보고 분노하는 이번 사건보다 훨씬 심각합니다. 그렇기에 블라인드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 재직 경찰관분들이 “문제가 없다”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합니다. 실제 현장은 반말은 기본이며 더 강압적인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.
- 이 사건에 국민들이 분노한다면, 지금까지의 수사 관행과 피의자에게 대하는 태도 자체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는 게 아닐까요?
- 남성은 경찰관들이 집에 찾아왔을 때 당황해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고, 경찰관들도 변명을 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. 그렇기에 남성은 경찰서에 직접 방문해서 사건에 대해 확인하였으나 담당 경찰관은 자리에 없었고, 대신 민원을 담당한 경찰관은 “떳떳하면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”라는 말을 남겼습니다.
- 그러나 변호사로서 그 경찰관의 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.
- 고소를 당했다면 고소장을, 112신고를 당했다면 112신고내역서를 정보공개청구하고 어떤 죄로 수사를 받고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. 그리고 유리한 증거를 스스로 수집해야 합니다. 죄가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죽습니다.
- CCTV는 객관적인 자료지만, 경찰이 이 영상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.
- 1개월 정도면 보관기간이 지나 삭제되는 경우가 많으니 발로 뛰어 삭제되기 전에 CCTV영상을 확보해야 하고, 당시의 상황을 분 단위로 재조합해서 짜임새 있게 앞뒤 상황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.
- 그날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기억해내면, 시간대별로 그 행동의 순서를 모두 메모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남겨둬야 합니다.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함입니다.
- 피의자 조사는 몇 개월 뒤에 이뤄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. 그런데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방어할 수 없습니다. 상대방의 진술도 증거이기 때문입니다(그렇기에 저는 요즘 밈처럼 사용되기도 하는 “피해자의 눈물이 증거”라는 말을 밈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).
- 그렇기에 억울한 상황이라면, 상대방보다 더욱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.
- 변호사가 될 줄 꿈에도 몰랐던 어린 시절, ‘역전재판’이라는 게임을 즐겁게 했습니다.
- 그 게임은 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를 즉시 유치장에 가두고, 곧바로 재판이 열립니다. 사건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,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곧바로 유죄 판결이 선고됩니다. 유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하는 게임입니다.
- 그런데 그 게임의 룰이 우리나라의 사법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. 객관적인 물증 없이 진술만 있는 사건의 경우, 반대되는 두 사람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믿을지의 문제가 됩니다.
- 그때 무죄추정의 원칙은 무시되고,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유죄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.
- 우리는 사법기관(경찰도 넓은 의미의 사법기관입니다)이 실체적 진실을 찾아 공평하게 수사하고, 재판해 주기를 기대합니다.
그러나 그것은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.
- 사법기관에 수많은 사건이 몰려옵니다. 사건은 눈앞에 던져져 있고, 그들은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 합니다.
그들은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지 않습니다.
- 우리가 발로 뛰어 찾아온 증거들을 떠먹여 주듯 제출해야 겨우 판단해 준다고 생각하는 게 편합니다.
이번 사건은 공론화되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으므로, 경찰관들은 수사력을 총동원하여 실체적 진실까지 찾아 줄 것입니다.
- 그런데 공론화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?
-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되면 매우 위축되는 것이 정상이며, 피의자는 담당 경찰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.
- 그렇기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, 반말로 피의자의 자백을 강요하고 압박하는 분위기가 일상화되었습니다.
이러한 관행 자체를 깨부술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.
- 바람처럼 잠깐 스쳐가는 이슈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.